화를 낼 때 받는 피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은 목적이 있기 때문에 나의 영혼이 느끼는 것이다. 내가 지금 화가 난다는 것은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신호를 받는 것이다.
화가 날 때, 나는 마음에너지가 닫히는 것을 느낀다. 이것이 내가 화를 낼 때 받는 가장 큰 피해이다. 그 때는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바른지 틀린지 분별을 하지 못할뿐더러, 주위의 인연을 바르게 대하지 못하게 된다. 나아가,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여 상황에 맞는 해답을 못 찾게 되며, 심할 경우 그 동안 쌓아놓은 공부도 모두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화가 처음 살짝 날 때는 마음에너지도 조금만 닫힌다. 그때 그것을 얼른 감지하고 나를 돌아보려고 노력한다면, 나는 거기서 빠져나와 다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나를 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외골수로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마음에너지가 더욱 닫히게 되고, 대자연과의 연결도 희미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 작은 생각 속에 완전히 빠져서 상황을 악화시키게 된다.
마음에너지는 대자연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눈이다. 마음에너지가 닫힌 채 화를 계속 내게 되면, 마치 눈을 감고 주먹을 내휘두르는 격이 된다. 주위에서 나를 도우려고 온 인연들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 콘크리트벽을 쳐서 내 손이 부러져 더 이상 못 쓰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수행자들이 탐진치 (탐욕, 진노, 무지) 이 세 가지를 삼독이라고 하여, 수행을 통해 다스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화 또는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가?
화에서 벗어나는 길.
화가 일어난다면, 작은 틀에 갇힌 나의 의식을 빨리 돌려 더 큰 관점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앞으로 10년 후 또는 20년 후의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또는 2070년이 될지 2080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죽음의 관문 앞에 섰을 때, 내 인생을 주마등처럼 되돌아보는 상상을 해본다.
돌아갈 때는 내가 이루어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때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초라하게 돌아갈 것인가? 풍성하게 이루어서 돌아갈 것인가?’ ‘내 영혼이 풍요로운 수확을 거두기 위해서, 지금 당장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런 상상을 하고 이런 질문들을 던지다 보면, 나의 의식이 넓어진다. 나의 의식이 작은 틀에 고정되어 있다가 어느새 빠져나와 다시 본래 자리를 되찾게 된다.
또 하나,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 ‘내가 지금 신나고 재미있고 보람 있는가?’이다. 왜냐하면, 이때 내 마음에너지가 최고 상태로 활동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신나고 재밌고 보람 있다면,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화를 내지 않고 능히 답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주변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내 일이 재미있고 바쁜데 거기에 왜 신경을 쓰겠는가? 나는 최근 지식인들이 자기들의 논리를 만들어 그 안에서 분노하고 세상을 비난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이들은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신나지도 않고 재밌지도 않고 보람도 없으니까, 자신들의 영혼에너지를 그런 것에 소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고, 그 상황에 묶여 한 발자국도 못 넘어갈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영혼의 질량의 차이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거기에 사로잡혀 바른 분별을 못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틀릴 수 있고 나는 지금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겸손하게 생각하면서, 내 공부든 일이든 재미있고 신나게 하고 있다면, 내 영혼이 보람을 느끼면서 화가 나는 순간에 사로잡히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나의 결론.
화를 다스리는 핵심은, 항상 내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큰 그림을 잊지 않고, 신나고 재미있고 보람있게 공부하고 일하는 것이다. 정말 책임이 있고 의무가 있는 사람은 사사로운 것에 걸리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 이 사람은 화를 승화시켜 자신의 성장 동력으로 전환시킨다.